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옥의 묵시록 (문단 편집) == 해설 == 영화는 [[미군]]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그린베레]]의 고급장교인 월터 커츠 대령[* 원작에서는 잘 나가는 상아 밀수상.]이 의문의 편지를 [[사이공]]의 [[베트남 전쟁/미군|MACV(남베트남 원조 미군 사령부)]]로 보내고 베트남 정글 속에 잠적,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자 커츠를 제거하기 위해서 파견된 특수작전그룹 윌러드 대위의 독백과 함께 윌러드의 팀이 그리는 행적을 추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마지막에 커츠를 죽인 월러드가 커츠를 숭배하던 현지 부족민들에게 새로운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듯한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베트남전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대표적인 반전 영화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화 속에 나오는 전쟁에 대한 공포 및 반전적 요소로 [[전두환]] 정권 체제[* 전두환과 박정희 시절에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Z(영화)|Z]]나 [[계엄령]]을 비롯한 군부에 대하여 비판적인 영화들 및 반전 영화, 전쟁에 대한 참혹함을 다룬 영화들이나 감독의 사상을 문제삼아([[채플린]]이 그런 경우) 연이어 상영금지되었다.]에서 9년이나 수입이 금지되었다가 1988년에서야 개봉했고 나중에 편집되었던 프랑스인 농장 장면 등을 다시 넣은 [[감독판]]이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199분)라는 이름으로 2001년에 재개봉하였다. 더불어 비디오는 멋대로 자막을 넣으면서 원작 모독이라는 비난도 들은 바 있다(이 영화는 제목이 자막으로 안 나온 채로 시작되는데 국내 비디오에서는 원제목을 작게 대충 자막으로 넣었다). CG 전혀 없이 사람 손으로 제작하다 보니 제작비도 엄청났다. 제작비는 총 3,150만. 지금으로 치자면 2억 달러 이상급 제작비인데 연도를 생각하면 엄청난 모험이었다. 흥행도 그럭저럭 성공하며, 비평과 흥행 둘 다 잡았는데 당시 북미 극장 흥행으로 그래도 제작비 2배에 달하는 7,880만 달러 정도 벌었고 해외 흥행까지1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성공했다. 하지만 다만 늘어나는 제작기간과 비용으로 코폴라는 자기 재산 전부를 저당잡혀 빚을 내어 만들었기 때문에 흥행 수입은 거의 빚쟁이들이 챙겨가고 코폴라는 그다지 수익이 없었다. 그래도 영화 흥행 성공이라 투자를 계속 받게 되었는데 3년 뒤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영화 <원 프롬 하트>를 만들지만 2700만 달러를 들여서 북미에서 겨우 63만 달러를 벌며 그야말로 쫄딱 망하고 파산했다. 영화도 유명하지만, 영화 촬영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봐도 이건 영화 한 편이 되고도 남는다. 그래서 1991년에는 <회상: 지옥의 묵시록(Hearts of Darkness: A Filmmaker's Apocalypse)>이라는 촬영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와 호평을 받았는데, 코폴라 감독의 아내인 엘리노어 코폴라[* 인터뷰에서 엘리노어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룩은 전쟁영화가 아닌 성장영화라는 평을 내렸다.]가 공동 감독을 맡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1993년에 <회상! 지옥의 묵시록>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나오고 1996년에는 비디오 시디로 재출시되었으며 이후 2012년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판에 DVD-Video 2번 코드[* 유럽(PAL, SÉCAM)/일본(NTSC). 한국은 3번 코드 NTSC로 이 둘의 공통점은 멀티 시스템 플레이어가 있어야 국가별로 호환이 된다.]로 수록되어 국내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5px-Africa_Addio_-_Blood_and_Guts.jpg]]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몬도가네]]로 유명한 괄티에로 야코페티(Gualtiero Jacopetti,1919~2011) 감독(프랑코 프로스페리 1926~2004. 공동 감독)의 1966년작 라는 영화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헬리콥터 위에서 사격하는 장면이라든가, 아이들의 팔을 잘랐다라고 언급한 것은 [[베트남]]에서는 그런 일은 실제로는 없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실화였던 그 사건을 다뤘다. 즉,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사건을 영화에서 베트남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말한 것이다. 살아있는 소의 목을 자르는 장면은 [[몬도 카네]]에서도 나온다. 가 모티브인 주요 장면은 다음과 같은데, 코폴라 감독의 의해 최상의 결과물로 재탄생했다. * 부족간 학살에서 손을 잘라내어 쌓아둔 것 : 커츠의 독백에 나오는 어린이 팔 집단 절단 * 죽은 어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새끼 얼룩말을 헬기 아래에 밧줄로 매달아 구조하는 장면 : 킬고어 첫 등장 전투 말미 기도하는 군목과 병사들 위로 소(식용)를 헬기에 밧줄로 매달아 약탈하는 장면 * 흑인들이 유두에 가리개를 붙인 백인 여성 스트리퍼를 구경하던 중 스트리퍼가 '이거 떼어버리고 싶지?'라고 말하는 장면 : 위문공연 장면에서 대사가 거의 그대로 나온다. * 식민지 독립으로 헐값에 재산을 넘기고 떠나는 백인 지주들의 애환 : 리덕스판 한정 프랑스 농장 * 콩고의 백인 용병단이 온갖 장소에 해골(피부가 말라붙어 남아있는)을 전시하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장면 : 커츠 본거지의 해골과 수급 * 잔지바르의 흑인무슬림 학살 현장에 헬기가 착륙하며 바구니가 날아가는 장면 : 발키리 브금 전투 시퀀스에서 부상병 구조헬기 착륙장면, 구도까지 매우 유사하다. 잔지바르 학살(해변가 학살, 난민캠프 학살) 전후 촬영분은 발키리 전투신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캠프 촬영분에서 무슬림 인질 구호물자를 낙하산 투하해도 반군에게 빼앗기는데, 킬고어 부대의 부상병 구조 헬기도 수류탄에 당한다는 점에서 공중 지원이 무력화되는 컨셉이 동일하다. * 학살한 하마, 코끼리 고기 시장에서 분할 판매 목적으로 동물 사지를 절단하는 장면 : 종반부 축제의 소 도축 장면 또한 [[존 포드]] 감독의 1945년작 에서 소형 고속정(스틸컷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설정을, [[존 휴스턴]] 감독의 1945년작 에서는 코폴라 본인이 카메오 출현한 장면(“Just go by like you’re fighting. Don’t look at the camera. It’s just for the television.”)을 가져왔다.(해당 영화 자체가 존 휴스턴이 전투 종료 이후 도착했기 때문에 재현 촬영한 모큐멘터리로, 군인들이 이동중에 카메라를 쳐다보도록 연출한 장면) 포드와 휴스턴을 포함한 미군 종군감독(?) 5인('[[젊은이의 양지]]' 조지 스티븐스, '[[벤허]]' 윌리엄 와일러, '[[멋진 인생]]' 프랭크 카프라~~미친 라인업이다, 미국영화판 솔베이 회의~~)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 에 코폴라가 출연하기도 했다. 코폴라 감독은 민간인들을 헬기로 죽이는 장면을 예로 들며 이 영화가 반전영화가 아니라고(Apocalypse Now is not an anti-war film) 말한 바 있다. 반전영화는 폭력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버마의 하프]](1956)같은 작품이 반전영화라고 언급했다.[[https://www.theguardian.com/film/2019/aug/09/francis-ford-coppola-apocalypse-now-is-not-an-anti-war-film|#]]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